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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N∃M/Who is he?

에미넴 ?? - 난 그냥 Marshall Mathers 일 뿐이야





Marshall Bruce Mathers III





 

 

 

a.k.a
 
Eminem
Slim Shady
 
현존하는 최고 랩퍼 중의 하나
백인으로써 흑인음악의 길을 걸어 정상에 오른 아티스트
음란하고 정신나간 골칫덩어리
남 까대길 좋아하는 백인랩퍼
.
.
.
사람들이 그를 칭하는 방법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에미넴을 '인생의 바닥에서 모든 걸 극복하고 아픔을 이겨낸 사람' 이라고 칭하고 싶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그저 이 포스팅을 읽어보시란 말 외에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Eminem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그의 본명은 Marshall Bruce Mathers 3세,
가수로서의 그의 이름인 Eminem은 Marshall Mathers에서 각각 M을 따와 만든 M&M에서 나온 것으로
M&M은 에미넴이 언더에서 활동하던 시절 불리던 호칭이다
이번 포스팅에선 그의 음악적 자아인 Slim Shady도 Eminem도 아닌
인간 Marshall Mathers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디트로이트의 빈민가 소년에서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Marshall 2세>                   <Debbie Briggs>                           <에미넴이 어릴 적 살았던 집>

 


에미넴은 1972년 10월 17일 미주리주 켄자스시에서, Marshall Mathers 2세 Debbie Briggs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Marshall 2세와 Debbie는 1972년 결혼했는데, 당시 우리나라 나이로 15살이었던 Debbie는 벌써 에미넴을 임신한 상태였다. 몇 달 후 아이가 태어났고, Marshall 2세가, 태어난 지 얼마지나지 않은 자신의 아들과 부인을 버리고 도망가면서그 둘의 결혼생활은 1년 여만에 끝나고 말았다. 이후 오늘날까지 에미넴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다.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던 것이기도, 만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엔 그리움과 원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성인이 되어선 증오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렸고, 에미넴이 성공한 뒤, Marshall2세는 그의 아들과 만나고자 했으나 에미넴은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에미넴의 증오는 단 한 줄로 요약된다.
When you see my Dad, tell him that I slit his throat in this dream I had
추가로 덧붙이자면, 에미넴이 살았던 저 허름한 집은, 후에 고가에 팔렸다고 한다 (몇 천만 원에 팔렸던 것으로 기억)

 




 

한편 Marshall2세가 떠난 뒤 Debbie는 여러 남자를 만났고, 1986년, 에미넴의 이부 동생 Nathan이 태어난다. (이복 여동생도 있는데, 그 동생과는 연락하지 않는 듯 하다) 하지만 Nathan의 아버지로 알려진 사람은 Nathan이 친자가 아님을 주장하며 Debbie와 헤어졌다고 한다. 에미넴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Debbie와 에미넴의 관계는 좋지가 않다. 15살이라는 어리디 어린나이에 에미넴을 낳아, 홀로 아이를 부양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웠을텐데, 설상가상으로 Debbie는 약물중독자였다. 에미넴은 어린 시절, 엄마는 늘 약에서 손을 떼지 못했고, 엄마의 침대 매트리스만 들기만 하면 약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MMLP 수록곡 Marshall Mathers 참조) 하지만 Debbie는 자신이 엄마 노릇을 허투루 하지않았다 생각하였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에미넴에게 음악cd를 만들어 들려줬다고 한다.(TES수록곡 Cleanin' out My Closet 참조)



<에미넴과 Nathan>



하지만 유년 시절의 에미넴에게 의지할 가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에미넴의 왼쪽 팔뚝 문신에 자리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의 외삼촌, Ronnie(본명 Ronald Nelson)가 있었기 때문이다. Ronnie는 힙합이라는 음악을 에미넴에게 알려준 장본인이자, 유년 시절 에미넴이 심적으로 의지할 수있었던 몇 안되는 가족이었다.(고는 하지만 에미넴보다 3살 어렸다) 삼촌이지만 형제와 같았던 Ronnie가 1992년 여자문제로 자살한 뒤 에미넴은오랫동안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Ronnie가 자살하며 안그래도 좋지않았던 에미넴과 Debbie의 관계는 더 악화되고 마는데, Ronnie가 죽고난 뒤Debbie가 에미넴에게


- "죽어있는 게 너이길 바랐다" 는 엄청난 폭언을 퍼붓고 만것이다 (역시 Cleanin' out My Closet 참조)





 




Ronnie가 사망한 뒤 에미넴의 외할머니는 Ronnie의 dog tag 목걸이를 에미넴에게 주었다고 한다.

에미넴은 어린 시절 한동안 외할머니 Betty의 집과, 외삼촌 Todd의 집에서 살았었는데 (Todd는 2004년 사망), 

에미넴은 원래 외할머니와는 잘 지내는 편이었으나, 죽은 Ronnie의 데모테잎을  정식으로 발표하려는 에미넴과 달리 Betty는 데모앨범이 발표되길 원치 않았고 그 뒤로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한다.

   

 

에미넴에겐 Ronnie외에도 진정한 가족이 한 명 더 있었으니 그가 Proof다. (본명 Deshaun Dupree Holton)

Proof는 어린 시절부터 2006년까지 에미넴과 함께했던 절친한 친구이자 가족으로서 에미넴보다는 1살이 어렸다.

안타깝게도 그는 2006년 클럽에서 총을 맞아 사망하고 만다.

 

에미넴은 그를 추모하며 자신의 왼쪽 팔에 Proof가 했던 문신을 새기고, 곡을 쓰기도 했는데 그 곡이 바로 Difficult다 (정식 발매는 되지 않음) 에미넴과 Proof는 서로를 Doody라는 애칭으로 불렀는데, 에미넴 자신도 어디서 유래한 별명인진 모른다.

Proof의 죽음으로, 에미넴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함께 해주었던 두 가족을 모두 잃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유일한 가족같았던 두 사람을 모두 잃은 그의 심정은 차마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Proof라면 2005년 갑자기 투어를 중단하고, 수면제와 알코올에 빠져들었던 에미넴을 더 일찍 구해낼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에미넴이 더욱더 약에 빠져든 데에는 Proof의 죽음도 있지 않았을까.......




<Proof>                      <Proof와 동일한 문신을 새긴 에미넴>                   <Proof와 에미넴>



에미넴은 우리나라 나이로 14살 때부터 랩을 시작했다고 한다. 불우하고 힘겨웠던 어린 시절, 에미넴이 의지하고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은 힙합이었다. 14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랩을 시작한 에미넴이 Recovery를 발매한 2010년은, 에미넴이 랩을 시작한지 25년이 되는 해였다. (Recovery 수록곡 25 to Life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 8마일에서 볼 수 있듯, 디트로이트 힙합세계에서 백인으로 인정받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수 많은 멸시와 조롱, 무시를 당하면서도 랩을 포기할 수 없었던 에미넴은 자신이 인정받는 길은 실력 뿐이라 생각하며 끊임없이 랩배틀에 나갔고, 결국 오늘날 대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복잡하고도 복잡하도다 [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을 증오해 !!!!!]

- Marshall and Kim





헤일리와 더불어 에미넴의 노래 속에 자주 등장하는 그 이름, 바로 Kim(Kimberley Anne Scott)이다.
1990년, 킴이 미국 나이로 14살,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 1991년부터 사귀기 시작한 둘은, (킴이 1월 생이라 학교에 일찍 들어간거로 추정) 1995년 12월 25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only lady he adores, Hailie Jade를 얻었고 이후 둘은 이별과 화해를 반복했다.
 
둘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삐걱이기 시작한 것은 헤일리가 태어난 이듬해인 1996년부터였다.
다른 언더 래퍼들과 작업을 해왔던 에미넴은, 1996년에 드디어 자신의 비정규 첫싱글앨범인 Infinite를 발표하게 된다.
하지만 이 앨범은 평단과 대중에게서 외면을 받았고, 당시 헤일리의 기저귀값도 버거울 정도로 큰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던 에미넴과 킴은 크게 낙심한다. 킴과 에미넴은 언성을 높이거나 다툼을 하는 일이 잦아져 결국 별거에 들어갔고 음악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힘겨웠던 에미넴은 충동적으로 약을 과다복용해 자살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다행히도 그의 자살시도는 실패했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의 멘토이자, 인생의 구원자라 할 수 있는 Dr. Dre를 만난다. 

드레가 처음 에미넴의 랩을 들은 것은 1997년 작은 라디오 쇼를 통해서였다. 드레는 당시 에미넴의 프리스타일 랩을 듣고 괜찮다고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 에미넴에게 연락을 취하거나 만나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드레는 지미 아이빈이 자신에게 건네준

"이 랩을 하는 사람이 백인이라는 건 생각도  못했다"는 에미넴의 데모테입을 듣게 되었고 연락을 취해 에미넴을 LA로 불러들인다.

(랩 올림픽에서 2위를 하고 매우 낙심해있던 에미넴이 "당신의 데모테잎 좀 줄 수 있냐"는 지미 아이빈의 말에 던지듯 건네준 그 테잎이 바로 드레가 듣게 된 테잎이었던 것이다!!!!!)


협찬받은 노란색 점프수트를 입은 채 닥터 드레의 스튜디오로 들어서던 에미넴을 보며 드레는

'바나나같다'  생각했다고..

무튼, 이렇게 드레를 만나 1999년, 드디어 정규앨범 The Slim Shady LP 를 발매하게 된 에미넴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엄청난 인기와 부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에미넴과 킴은 엠이 자신의 첫 번째 투어를 떠나기 얼마 전인 1999년 6월 14일, 미주리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다. 



이렇게 에미넴과 데비의 사이도 조금 나아지고, 안정된 삶에 정착하는 듯 싶었었으나 같은 해, 데비는 자신의 아들 에미넴을 상대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켰으니' $10mil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한다.

The Slim Shady LP의 수록곡들이 자신을 약물중독에, 백인 쓰레기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주위에서 자신의 평판이 나빠졌고, 자신감이 사라지고, 수치심이 든다는 것이었다. 재판결과 데비에겐 $25,000만이 돌아가게 되었는데, 선임료 등을 제외하고 데비가 얻은 순금액은 $2000도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어머니와의 소송이 끝난 뒤, 에미넴은 또 다른 소란과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실제로 debbie와의 소송절차가 모두 마무리 된 건 2002년 3집 The Eminem Show가 발매되기 얼마 전)





2000년, 에미넴이 자신의 두 번째 앨범인 Marshall Mathers LP에 킴을 살해하는 과정을 묘사한 Kim을 수록하여 발매했기 때문이다. 또한 에미넴은 그 해 6월 3일 새벽, Hot Rocks라는 클럽 앞에서 킴과 키스를 하고 있던 클럽경비원 John Guerrera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고 만다. 에미넴은 Guerrera를 주먹으로 폭행했다고 주장했으나, Guerrera는 에미넴이 장전되지 않은 9mm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폭행했다고 주장하며 에미넴을 고소했고, 결국 에미넴은 흉기에 의한 폭행과, 미신고 무기소지로 2년의 보호감찰과 지나친 음주금지라는 처벌을 받게 되었으며  Guerrera에게 $100,000를 지급하는 것으로 소송을 마무리 짓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해 7월 7일, 킴은 엠이 콘서트에서 자신이 참석해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닮은 blow up doll에 폭행을 가하며 Kim을 공연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그 날 밤 미시간에 있는 둘의 집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였다. 에미넴은 8월에 이혼소송을 제기했으며, 킴은 에미넴을 상대로 $10mil짜리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다. 

둘은 결국 8월 29일 헤일리의 실질적 양육권은 킴에게 돌아가며, 에미넴은 원하는 때에 헤일리를 만날 수 있다는 합의 하에 결별을 발표하였으나  그 해 12월 화해하여 이혼소송을 취하한다.하지만 4개월 뒤인 2001년 3월, 킴은 이혼소송을 제기하는데 이 때 이미 킴은 Eric Hartter라는 남자와  Whitney라는 딸을 가진 상태였다.

에미넴은 이 Whitney를 입양하여 오늘날까지 킴과 함께 키우고 있는데 정말 대인배가 아닐 수 없다. 결국 같은 해인 2001년 10월 11일, 킴이 새 거주지를 구할 수 있도록 에미넴은 킴에게 $475,000를 지급하며, 헤일리의 양육권은 킴과 에미넴이 공동소유한다는 판결과 함께 둘의 이혼소송은 마무리 된다. 

 <헤일리>


당시 에미넴은 헤일리의 공동양육권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는데, 킴이 에미넴이 아버지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재판에서 증명하려했기 애썼기 때문이었다. 2003년, 킴은 코카인 소지로 체포되었고, 이 사건으로 에미넴은 헤일리에 대한 단독양육권을 얻게 된다.   




이걸로 끝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

 

둘은 2004년 말 화해했고, 2006년 1월 14일 재결합한다. 에미넴은 31, 킴은 29의 나이였으며, (우리나라 나이로는 엠은 33, 킴은 30살이 됨,  (미국은 태어나고 1년이 지나야 1살이 되고, 생일이 지나지 않으면 해가 바뀌었다고 해도 나이를 먹은 것으로 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계산과 달리 엠과 킴의 나이차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2살~3살 사이로 바뀌게 된다) ) 

둘은 미시간에 있는 오클랜드 대학교 캠퍼스 내의 작은 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다음은 두 번째 결혼식에서 돌린 청첩장

 

"This day I will marry my best friend, 

the one I laugh with, live for, love.

Kimberley Anne Mathers and Marshall Bruce Mathers III

On 14 January at 5pm they hope you will join them

as they exchange vows and the celebration of their 

new life together."



"이 날, 저는 제가 함께 웃을 사람이자, 

살아갈 이유이자, 사랑하는 사람이자,

저의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합니다.

Kimberley Anne Mathers와  Marshall Bruce Mathers 3세

1월 14일 오후 5시, 저희가 서약을 나누고, 

부부로서의 새 삶을 축복하는 자리에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킴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자신은 재활원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에 둘의 관계를 서두르고 싶지 않았으나, 엠이 둘의 기념일에 맞추어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며 재촉하는 바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띠로리~♩

에미넴은 41일 뒤인 2월 25일, 집을 나갔고, 72일 뒤인 4월 5일 이혼소송을 청구한다. 12월 19일 둘의 이혼소송은 마무리 되었고, 헤일리에 대해 킴과 에미넴이 공동양육권을 갖기로 결정한다. 역시 킴의 인터뷰에 따르자면 엠은 한 마디 말도 없이 화장실 거울에 포스트잇 한 장만을 남긴채 떠나버렸고, 아이들 또한 만나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변호사를 통해 이혼서류 셔틀을 했다고.

참으로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아..........복잡하고 복잡한 관계를 줄여 보자면

결혼->결별->화해->이혼->화해->결혼->이혼 이 되겠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 둘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접지 못한 듯 하다. (적어도 에미넴은..)

작년에 발표한 Recovery의 수록곡 Going Through Changes를 듣다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Hailie this one is for you, Whitney and Alaina too,

I still love your mother, that'll never change,

Think about her every day,

we just could never get it together.

Hey, wish there was a better way, for me to say it,

But I swear on everything,

I'd do anything for her on anyday.

There are just too many things, to explain


헤일리, 이건 너를 위한 거란다

위트니와 알레이나에게도

난 아직도 엄마를 사랑해, 그건 절대 변치 않을거란다                <에미넴의 세 딸, 위 쪽부터 알리나, 헤일리, 위트니>

      

아빤 매일 엄마를 생각해.                                                     

우린 절대 함께할 수 없었을 뿐이야

달리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모든 걸 걸고 맹세컨대,

언제라해도 난 네 엄마를 위해 뭐든지 해줄거란다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을 뿐이야






이게 정말 Kim을 쓰고 노래했던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Kim을 들어본 분들만 아실테지만,,,,,이건 정말 적응 안되는 분위기인 것이다.

 

에미넴과 킴의 관계는 정말 말 그대로 애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킴과 에미넴의 측근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They can't live with each other, but they can't stay away. They're crazy about each other and they keep trying." 


두 사람은 같이 살지를 못해요, 그렇다고 떨어져서도 못살죠. 서로에게 미쳐있어요. 함께 하려 계속 노력하죠

 


2003년도에 머라이어 캐리와 크게 스캔들을 빵~빵~ 터트려주신 이후 에미넴은 아직까지 이렇다~할 여자관계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안으론 누구를 만나고 있을진 모르는 법)

에미넴이 머라이어를 물고 그렇게 끈질기게 버텼던 것을 보면, 둘 사이에 분명 뭔가가 있었던 게 분명한 거 같다

Superman에선 '내 새 마누라라도 되려는거야? 네가 머라이어냐?"라는 가사가 나오기도.

머라이어가 에미넴과 썸 이상의 관계가 있었으나 나중에 입을 싹 닫자 에미넴이 좀 화가 났던 게 아닌가 싶다.

기자가 머라이어에게 에미넴과의 관계에 대해 묻자"난 캔디(=M&M)는 안먹어요~" 라고 했다니 .................












Only lady I adore, Hailie Jade 난 너 없인 못 살아

 

 

앞에서 에미넴의 친딸 헤일리를 소개하였다.

에미넴에겐 모두 세 명의 딸이 있는데 헤일리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에미넴의 친딸이 아니다. 첫째딸 알레이나는 실질적으론 에미넴의 조카로, 킴의 쌍둥이 자매의 딸이다. 하지만 킴의 쌍둥이 자매는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았고,

에미넴과 킴이 입양을 결정했다고 한다.

막내 딸 위트니는 앞에서 말했듯, 킴이 이혼소송 중 혼외정사로 낳은 아이로다시 한 번 말하건데 에미넴은 대인배일 따름이다.




물론 에미넴에게 있어 세 딸 모두 소중하겠지만, 그 중 에미넴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헤일리일 것이다.


헤일리는 '97  Bonnie & Clyde,  Hailie's Song , My Dad's Gone Crazy,  Mockingbird , When I'm Gone , Beautiful , Going Through Changes, Cleaning Out My Closet 을 비롯해 수 많은 에미넴의 노래 속에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Hailie's song이나 When I'm Gone

에미넴이 헤일리를 위해 만든 노래이기에

헤일리에 대한 에미넴의 감정을 여과없이 느낄 수 있다

 




Sometimes I think theres nothin' to live for

I almost break down and cry

Somtimes I think I'm crazy

I'm crazy, oh so crazy

Why am I here, am I just wasting my time?

But then I see my baby

Suddenly I'm not crazy

 

때로는 내게 살아야할 이유가 없는 거 같아

난 무너져내려 울 것만 같지

때로는 내가 미친 것 같아

난 미쳤어 정말 미쳤지

난 왜 여기 있을까, 그저 시간낭비 인건가?

그러다 난 헤일리를 봐

갑자기 난 미치지 않았지



- Hailie's Song 중에서 -


  

Hailie's Song은 사실 에미넴이 나중에 헤일리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사적인 노래라고 한다. 공개적으로 발매할 만큼 완성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했던 에미넴을 드레가 설득했고 결국 이 노래는 에미넴의 앨범에 TES에 수록되어 세상에 나오게 된다.

 

노래 가사로 짐작해보건데, 불우한 어린시절과 약물중독으로 힘든 인생을 살면서 Ronnie와 Proof라는 정신적 지주마저 잃은 에미넴에게 세상을 저버리거나, 이성의 끈 놓아버리고 싶을 때 마음의 위안이 되었던 것은  딸 헤일리와 음악이 아니었나 싶다. 에미넴은 이혼 후 결혼반지 대신 헤일리가 준 DAD가 새겨진 반지를 끼고 다녔다고 한다.

 

  

보통 부모에게 버려지다싶이 성장기를 보내고 자란 사람들은  부모가 되어서도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자신이 당했던 만큼 자식들에게 돌려주려고 하는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에미넴은 Mockingbird에서 말하듯 헤일리에게 자신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인생을 주려 애쓰고 있으며,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나 그럴 것이다.

 

이렇게 항상 헤일리를 위해 애쓰는 그지만, When I'm Gone에서 말하듯 음악을 위해, 팬들을 위해 헤일리를 떠나갈 때면 크나큰 죄책감과 자신은 노래로만 헤일리를 사랑하는 위선자라는 자책감에 시달리는 듯 하다.

 

자룰은 간 크게도 '넌 헤일리의 할머니와 엄마는 미친여자라 하지.그럼 과연 헤일리는 커서 뭐가 될까?''라는 내용의 에미넴 디스곡을 만들었는데 에미넴은 헤일리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난 이성을 잃어버렸다고 말했으며 '한 번만 더 헤일리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간 가만 두지 않겠다'는 자룰 디스곡을 만들었다.







<어린시절 헤일리의 모습> 









인생 최악의 적, 약물중독




누군지 알아 보시겠는가......? 그렇다

내가 사랑하고 여러분이 아껴마지않는 에미넴이다

정말 못알아볼 정도로 달라지지 않았는가

난 내가 구글 검색창에 Eminem 철자를 틀리게 쓴 줄 알았다

마지막 사진은.......지금 봐도 정말 정말 정말 못 알아보겠다.

아직까지도 에미넴이라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듯, 2004년도까지 자신의 4번째 앨범인 Encore를 발매하며 활동하던 에미넴은 05년도 8월에 계획되어 있던 THE ANGER MANAGEMENT TOUR를 갑자기 취소한 채 잠적에 들어간다. 에미넴은 수면을 취하지 못해, 수면제를 자주 복용해왔는데 후엔 수면제없인 아예 잠에 들지 못했고 수면제에 중독되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 (05년도 뉴욕 콘서트 때도 살짝 살이 올라있던 것으로 보아 급작스럽게 약물에 빠져든 것은 아닌 듯 하다)




사실 에미넴에게 있어 약물중독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8마일을 촬영하며 고된 스케쥴을 견뎌야했고 때문에 수면제나 각성제를 자주 복용했는데, 이것이 후에는 일종의 '습관' 혹은 '취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When 'I'm Gone에서도 인정하듯이 에미넴은 수면장애로 인해 수면제를 수 없이 많이 복용했으며 이러한 그의 약물문제는 1집 The Slim Shady LP 때부터 노래의 주제로 자주 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엠은 약물에 대해 랩을 하기 전까진 약물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에미넴은 Proof의 죽음 이후 그의 약물 중독은 더욱 심해졌고, 바이코딘, 메타돈, 바륨(신경안정제), 알코올에 중독되어 년도까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다. 에미넴은 그 시절을 "난 내 자신을 돌보지 않았고, 그저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었다"고 회고한다. 재활원에서 수면제치료를 받고 나온 에미넴이 본격적으로 다시 음악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한 건 08년도였다.

(하지만 08년도 초까지도 에미넴은 비만에 올라있던 상태였다)


<활동준비를 시작하며 살이 조금 빠진 사진>                                           <현재의 에미넴> 




그렇게 약물 중독에서 벗어난 에미넴이 4년 만에 들고 돌아온 앨범이 바로 Relapse이다. Relapse앨범커버를 자세히 들여다 보신 적이 있는가? 앨범커버에 수북히 쌓여있는 저것은 죄다 알약이다. 앨범 제목부터 앨범커버까지 지난 4년 동안 잠적해있던 이유를 말해주는 듯 하다

오랜만에 돌아온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에미넴은 Relapse앨범에서 지나치게 다양하고 강렬한 악센트를 사용해 대중과 평론가들 모두로부터 악평을 듣게 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들에겐, 특이한 억양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거슬렸던가보다.

What happened to Em's accent? 라는 질문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닐 정도로 말이다. 다양한 시도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었을텐데 악평을 받아 아쉬울 따름이다. 사실 난 에미넴이 끝까지 자신의 새로운 시도와 노력, 앨범을 지지하길 바랐건만, Recovery앨범의 Not Afraid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만다

     

 

 "솔직히 말해, 지난 Relapse 앨범은 에계~, 진정해, 다신 그 길로  돌아가지않아"

                                                                                                                                          - Not Afraid 중에서 -

                                                                                                                       

 

+) 추가로 덧붙이자면, 근래에 들어 Relapse에 대한 엠의 생각이 확 바뀐 듯 하다.

Bad Meets Evil의 EP앨범 수록곡 The Reunion을 보면 말이다. 인터뷰에서도 "I don't hate 'Relapse' at all." 라고 말했다. 무엇이 엠의 마음을 바꿨는진 알 수 없으나 바꾼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Relapse의 My DarlingBeautiful 에선

자신의 약물중독에 대한 두려움, 재기에 대한 불안함, 걱정 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Dr.West에서 '안돼'라며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에선 절박함마저 느껴진다.

4년 만의 앨범,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혀온 약물문제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고뇌와 고민이 묻어나는 앨범이라 말하고 싶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가 Relapse를 지나 Recovery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Not Afraid에서 말하듯, 그는 이제 더 이상 숨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의 가장 깊은 마음 속 두려움과 맞설 것이고,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며 자신의 결정에 확고하며 두려움은 없다.

이러한 회복을 걸친 그가 다음엔 또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디트로이트의 빈민가 출신 백인 소년이 흑인의 음악이나 다름없는 힙합에 발을 들이고, 정상에 오르기까지 수 많은 일들을 겪었다. 백인으로써 흑인음악의 길을 걷는 데, 조롱과 멸시, 무시를 당했을 것이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가족에게 상처를 받았고,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기도 했으며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외로움에 사로잡혔을 수도 있다.

 

거친 언어를 내뱉으며 무대를 장악하는 그의 모습에선 나약함따윈 보이지 않기에

사람들은 그를 천하무적에, 눈물 하나 없는 강철인간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말하듯, 그에겐 지지해주는 팬들이 필요하며 그들의 신뢰와 사랑이 필요하다

 

그가 보여주는 거친 Shady의 내면엔,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수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은 채 어렵게 어렵게 성장해 온 Marshall이 있다. 당신은 Eminem의 말에. Shady의 말에 돌을 던질수도, 환호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Eminem의 음악에, Shady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전, 먼저 >Marshall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권해본다

그의 말이, 그의 음악이 훨씬 더 또렷히 들릴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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